인구론 들어보기는 했는데..

멜서스의 인구론

혹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 유명한 경고는 1798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226년 전 한 영국 성직자가 던진 충격적인 메시지였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이고, 그의 저서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은 인류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았던 경제학 문헌 중 하나가 되었죠.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한복판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있었고,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맬서스는 갑자기 나타나 “인류는 머지않아 파멸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니,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요? 오늘날 우리가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현실을 본다면, 맬서스가 되살아나서 “무슨 농담을 그렇게 심하게 하는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1. 맬서스는 누구였을까?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는 1766년 영국 서리주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1797년 영국 성공회 성직자로 서품받아 알버리 교구의 부목사로 일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맬서스는 생전에 자신을 ‘로버트’라고 불러달라고 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냥 ‘토마스 맬서스’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1804년 자신의 종질인 헤리어트 에커설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는데, 정작 자신은 인구 억제를 주장했으면서도 평범한 가정을 꾸린 셈이죠.

1805년부터는 동인도회사가 설립한 헤일리버리 대학에서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했는데, 이는 역사상 최초의 전업 경제학자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애덤 스미스가 도덕철학 교수였던 것을 생각하면 꽤 의미 있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1798년 맬서스가 32세 되던 해, 그는 충격적인 책 한 권을 익명으로 출간합니다. 《인구의 원리에 관한 일론(一論), 그것이 장래의 사회개량에 미치는 영향을 G.W.고드윈·M.콩도르세 그리고 그 밖의 저작가들의 사색에 언급하며 논함》이라는 긴 제목의 이 책이 바로 우리가 아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이 책이 쓰여진 배경을 이해하려면 당시 시대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18세기 말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었고,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평등과 진보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했습니다. 윌리엄 고드윈 같은 사상가들은 인간 이성의 힘으로 완벽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죠.

당시 영국 수상 윌리엄 피트는 오히려 인구 감소를 우려해서 정부의 빈민구제수당을 늘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맬서스의 저서는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죠.

맬서스는 1826년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이 책을 개정했는데, 매번 새로운 통계 자료와 비판에 대한 대응을 담아 논문을 보강했습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이 이론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3. 핵심 내용: 기하급수 vs 산술급수

맬서스는 자신의 인구 이론을 세 가지 논리적 전제에서 도출했습니다.

첫째,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즉, 1, 2, 3, 4, 5… 식으로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양만큼 늘어난다는 뜻이죠. 이는 한정된 토지에서 농업 생산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수확체감의 법칙’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둘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1, 2, 4, 8, 16, 32… 식으로 복리 이자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맬서스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제공한 미국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인구는 25년마다 두 배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노동자나 하위 계층 사람들은 물질적 생활 조건이 개선되면 출산율을 높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전제에서 맬서스는 무시무시한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225년 후에는 인구와 식량의 비가 512대 10이 될 것”이라며, 결국 인류는 식량 부족으로 인한 기아, 질병, 전쟁 등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고 예언했습니다.

4. 당대의 충격적 반응: “우울한 학문”의 탄생

맬서스의 저서가 출간되자 영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는 “영아 살해와 비참을 권유하고 빈민구호에 반대하는 비정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문학가 토마스 칼라일은 맬서스의 글을 읽고 나서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고 불렀을 정도였죠.

하지만 맬서스의 경고는 정치권에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상 피트는 아동 출생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빈민구호를 축소했고, 1834년 제정된 영국의 신구빈법에는 맬서스의 사상이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구빈원에 수용 시 부부를 분리 수용하고, 노동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노동을 강제하는 조치들이 시행되었죠.

맬서스의 인구 이론은 또한 1801년 영국 최초의 근대적 인구 조사가 실시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5. 놀라운 영향력: 다윈에서 정책까지

《인구론》의 영향력은 경제학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찰스 다윈입니다. 다윈은 1836년 비글호 탐험을 마치고 돌아온 후 맬서스의 저서를 읽고 나서야 진화의 기제가 ‘적자생존’, 즉 자연도태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생존 경쟁이라는 개념이 바로 맬서스의 인구 이론에서 나온 것이죠.

정치적으로도 맬서스의 이론은 근대 국가의 인구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이 대표적인 예이고, 한국도 1962년 보건사회부에서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슬로건으로 출산 억제 정책을 펼쳤던 것이 바로 맬서스 이론의 영향이었습니다.것이 바로 맬서스 이론의 영향이었습니다.

1978년 마이클 하트가 발간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서 맬서스는 80위에 올랐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인정받고 있습니다.

6. 맬서스는 왜 틀렸을까? 현대적 비판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맬서스의 예언은 명백히 빗나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기술 진보의 위력을 완전히 과소평가했다는 점입니다.

맬서스가 살았던 시대는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농업 기술의 혁신적 발전을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화학비료, 농약, 개량 품종, 기계화 등으로 농업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맬서스가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에게 인간은 단순히 지구 자원을 소비하기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혁신과 기술 발전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창조적 존재였죠.

2024년 기준으로 세계 평균 출산율은 2.23명으로 1950년대 5명에 가까웠던 것에 비해 반토막보다 더 떨어졌습니다. 오히려 현재는 인구 감소가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죠.

7. 여전히 유효한 맬서스의 경고

그렇다면 맬서스의 이론은 완전히 쓸모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에도 맬서스의 경고는 여전히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환경 문제 측면에서 살펴보면, 비록 식량 생산은 늘어났지만 지구 온난화, 자원 고갈, 환경 파괴 등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최근 식량부족에 따라 식량가격이 폭등하고, 화석에너지 과다 사용에 따른 지구 온난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신 맬서스주의’라는 이름으로 《성장의 한계》라는 책이 출간되어 전 세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인구증가, 자연자원 고갈, 환경오염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지구 하나만으로는 인류가 100년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진단을 내놓았죠.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동식물의 멸종이 가속화되고 있고,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담수 부족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맬서스의 기본 논리인 ‘자원의 한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8. 한국의 경험: 인구 정책의 역설

한국은 맬서스 이론의 영향을 직접 경험한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강력한 출산 억제 정책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합계출산율이 1960년 6.0명에서 1984년 1.74명으로 급격히 떨어졌죠.

하지만 이제는 정반대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2023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과거에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출산 장려를 위해 온갖 정책을 동원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이는 경제 발전과 함께 사회 구조가 변화하면서 출산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교육비 증가, 여성의 사회 진출, 개인주의 문화 확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9. 현대적 관점에서 본 인구론의 의의

오늘날 맬서스의 인구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우선 그의 예측이 틀렸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맬서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삼은 고전경제학은 자본주의 미래에 대하여 무엇 하나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기술 진보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가장 큰 오류였죠.

하지만 맬서스의 인구 이론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직간접적으로 예상했으며 이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환경 파괴, 자원 고갈, 소득 불평등 등의 문제를 선구적으로 제기했다는 측면에서 말이죠.

또한 맬서스는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들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유효수요 부족 문제 등은 훗날 케인즈 경제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케인즈는 맬서스가 수요 부족과 과잉생산의 문제를 최초로 지적한 것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10. 새로운 관점: 질적 변화의 중요성

현대에 와서 우리는 맬서스가 놓친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구 문제는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맬서스는 인구 증가 자체에만 집중했지만, 실제로는 인구의 연령 구조, 교육 수준, 기술 혁신 능력 등이 훨씬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처럼 급속한 고령화를 겪는 사회에서는 인구 수보다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부양비 증가 등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인적자본’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잘 교육받고 창의적인 소수의 인구가 훨씬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죠.

맬서스 시대와는 달리, 현재는 물리적 자원보다는 지식, 기술, 창의성 같은 무형 자산이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인구 증가보다는 인구의 질적 향상이 훨씬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역사가 주는 교훈

멜서스의 인구론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바로 미래 예측의 한계와 기술 혁신의 힘, 그리고 인간의 적응력입니다.

맬서스는 당시로서는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상상하지 못했던 기술 혁신과 사회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의 예측은 빗나갔죠. 이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들—기후 변화, 인공지능, 고령화 등—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관적 예측에만 매몰되지 말고, 인간의 창의성과 기술 혁신의 가능성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경고의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맬서스의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이론은 우리에게 장기적 시각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한국이 출산 억제에서 출산 장려로 정책을 180도 바꾼 것처럼, 사회 정책은 장기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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