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과 고전역학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세기적 대결

우주를 움직이는 두 가지 법칙의 충돌

안녕하세요, 아이템파파입니다.

혹시 동전을 던질 때 앞면인지 뒷면인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대부분은 ‘불가능하다’고 답하겠지만, 만약 동전의 무게, 던지는 힘, 공기의 저항, 중력의 영향 등 모든 조건을 정확히 안다면 어떨까요? 뉴턴의 고전역학 관점에서는 이론상 완벽한 예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원자보다 작은 세계에서는 이런 상식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20세기 초, 물리학계는 전례 없는 혁명을 맞았습니다. 지금까지 절대적 진리로 여겨졌던 뉴턴의 고전역학이 미시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양자역학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이론을 둘러싸고 당대 최고의 천재들이 벌인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이 있었습니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이 말이 단순히 종교적 믿음의 표현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우주의 근본 원리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이자, 과학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지적 대결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1. 고전역학: 완벽한 예측이 가능한 세상

고전역학은 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운동의 관계를 설명하는 물리학으로, 17세기 뉴턴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놀라울 정도로 명확합니다.

고전역학은 일상적인 더 쉽게 말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운동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행성들은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며, 시계의 추는 규칙적으로 왕복운동을 합니다. 모든 것이 수학적으로 정확히 계산 가능한 세상이었죠.

뉴턴역학에 따르면 현재의 모든 상태를 알면 앞으로 다가올 우주의 모든 일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미래는 현재에 의해 미리 결정돼 있는 것입니다라는 결정론적 세계관이 고전역학의 기반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한 과학 도서에서는 이를 “우주를 거대한 시계”에 비유했습니다. 모든 톱니바퀴의 위치와 속도를 안다면 만 년 후의 시계 바늘 위치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처럼 고전역학은 우주를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기계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이상한 현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이루어진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의 아원자 입자와 관련된 실험들의 결과는 고전역학으로 설명을 시도할 경우 모순이 발생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역학 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2. 양자역학의 등장: 확률이 지배하는 미시 세계

양자역학의 양자는 물리량에 기본 단위가 있으며, 그 기본 단위에 정수배만 존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이론이 가져온 충격은 단순히 물리량이 불연속적이라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아무리 기이하고 터무니없는 사건이라 해도, 발생 확률이 0이 아닌 이상 반드시 일어난다'(Anything that is possible will happen)는 물리학적 아이디어에 기초한다는 양자역학의 근본 원리는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물질은 파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물질파 이론에 따라 지금 방에 누워 있는 당신이 갑자기 옆 방으로 순간이동하여 벽을 뚫고 그곳에 나타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지 사람의 물질파 파장은 매우 짧기 때문에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0%에 수렴할 뿐이다라는 기이한 세계가 바로 양자역학이 묘사하는 현실입니다.

저는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마치 SF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상상이 아닌 실험으로 검증된 사실입니다. 인류가 역사상 만들어 낸 가장 정확한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는 양자역학은 현대물리학의 중심 이론으로서 물리학의 모든 문제를 설명하는데 있어 기본 이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정도로 정확성이 입증되었습니다.

특히 양자론은 모든 일이 이미 확정된 운명적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지 미래를 어느 정도의 확률을 가지고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라는 점에서 고전역학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3.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반발

이제 우리의 핵심 키워드인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양자론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론의 확률적인 해석 주사위에 비유하여 표현한 말이 바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종교적 믿음 때문에 양자역학을 거부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우주의 질서와 합리성에 대한 깊은 철학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을 개발한 이들 중 한 명인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의 무작위성을 좋아하지 않았고, 양자역학의 현상인 도깨비 원격현상등을 강력히 부정하면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양자역학의 근본에는 보다 깊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는 기록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인슈타인은 1905년 광전효과 이론으로 양자역학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드러난 확률론적 본질에는 끝까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4.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세기적 논쟁

당대 최고의 물리학술대회인 솔베이회의의 제5차 대회(1927년 브뤼셀)에서 보어는 양자론에 관한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도록 물리학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 아래,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계속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27년 제5차 솔베이회의와 30년 제6차 솔베이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사고실험을 제기해 보어를 곤경에 빠뜨리는 듯 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논쟁에서 흥미로운 점은 보어의 대응이었습니다. 닐스 보어: 그렇지만 신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릴지는 우리가 말할 바가 아닙니다라고 응답하며,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에 맞서 “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시오”라는 뜻으로 반박했습니다.

제가 물리학 수업에서 이 일화를 처음 들었을 때, 두 천재가 마치 철학자처럼 우주의 본질에 대해 논쟁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과학적 논쟁을 넘어서 인간이 우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습니다.

5. 코펜하겐 해석과 현실의 재정의

코펜하겐 해석은 우주를 거시 세계와 미시세계로 나누어 생각하는데, 우리의 일상생활이 포함되는 거시 세계는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 역학이 지배하는 세계이고, 미시 세계는 양자 역학이 지배하는 세계다

이 해석에서 가장 혁명적인 부분은 관측의 역할이었습니다. 관측자의 행위가 양자의 존재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코펜하겐 해석은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거시 세계에서 물질의 상태는 우리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태고, 우리가 눈으로 본다고 해서 그때 갑자기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아인슈타인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그는 달을 관찰하지 않을 때는 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라고 반문하며 코펜하겐 해석의 모순을 지적하려 했습니다.

6.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공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양자역학의 등장이 고전역학을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일상을 지배하는 이론인 고전역학은 태양계 내에서 일어나는 물체의 운동 따위의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기에 공학적 응용에선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로 양자역학에서 플랑크 상수를 0으로 극한을 취하면 양자역학이 고전역학으로 수렴하는데, 이를 대응 원리라 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즉, 고전역학은 양자역학의 특수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시세계 연구같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충분히 정확하고 계산하기도 간편한 고전역학이 현대물리학보다 훨씬 더 많이 쓰인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7. 현대에 이르러 증명된 양자역학의 승리

세월이 흘러 실험 기술이 발달하면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아인슈타인의 직관과 달리 양자역학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벨은 EPR 역설을 이용해, 조건법적 명확성(counterfactual definiteness)을 가정한 경우 양자역학과 국소적 이론 사이에 실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차이가 있음을 증명했다. 실험을 통해서, 실제 세계는 조건법적으로 명확하지 않거나 비국소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즉, 우주는 정말로 근본적으로 확률적이며, 아인슈타인이 믿었던 “숨은 변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사고가 쓸모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상 양자역학은 아인슈타인의 공격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그 이해가 보다 깊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결론: 신의 주사위와 함께 살아가기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은 결국 틀렸습니다.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우주는 근본적으로 확률적이며, 미시 세계에서는 정말로 ‘신이 주사위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우리에게 절망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주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신비롭고 흥미로운 곳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현대 물리학의 기초인 양자역학은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있으며,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등 차세대 기술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아인슈타인의 고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치열한 의문 제기가 있었기에 양자역학은 더욱 견고한 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우리는 우주의 신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이해하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관점입니다. 거시 세계에서는 고전역학의 결정론적 질서가, 미시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의 확률적 법칙이 각각 그 영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믿음은 틀렸지만, 그의 진리 탐구 정신과 우주에 대한 경외심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줍니다. 어쩌면 신이 정말로 주사위놀이를 한다면, 그 주사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법칙을 따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우리는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이 만들어낸 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반도체 칩에서는 양자역학이, 자동차의 엔진에서는 고전역학이 각각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학은 대립이 아닌 조화 속에서 인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이 양자역학과 고전역학, 그리고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과학의 발전은 언제나 기존의 상식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됩니다.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처럼,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할 때 진정한 진보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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