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종의 기원 많이 들어 봤는데 뭐지

다윈의 종의 기원

“정글의 법칙이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거지.”

회사에서 누군가 승진에서 밀려났을 때, 혹은 치열한 경쟁 상황을 설명할 때 우리가 자주 던지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이죠. 그런데 과연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이 개념의 의미가 정말 맞을까요?

1. 적자생존, 다윈이 만든 말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용어를 찰스 다윈이 처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해입니다. 이 용어는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1864년 그의 저서 《생물학의 원리(Principles of Biology)》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스펜서가 이 용어를 만든 시기입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1859년에 출간된 후, 스펜서는 이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1864년에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을 창안했습니다. 즉,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읽고 나서 나온 용어인 것이죠.

그렇다면 다윈은 언제부터 이 용어를 사용했을까요? 다윈은 《종의 기원》 초판(1859년)부터 4판(1866년)까지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용어만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5판(1869년)부터 스펜서의 제안을 받아들여 ‘적자생존’을 자연선택과 동의어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윈은 5판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허버트 스펜서 씨가 사용한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며, 때로는 똑같이 편리하다.”

이 역사적 사실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용어 자체가 다윈보다는 스펜서의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종의 기원 – 165년 전 나온 책이 여전히 논란인 이유

1859년 11월 24일, 다윈의 《종의 기원》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정확한 제목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족의 존속에 관하여》였습니다. 초판 1,500권은 하루 만에 완판되었고, 그 중 500권은 머디의 공공대출도서관이 구입했을 정도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다윈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는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1858년, 월리스는 다윈과 거의 동일한 진화론을 담은 논문을 다윈에게 보냈습니다. 20년간 연구해온 자신의 이론이 2등으로 밀릴 위기를 느낀 다윈은 급하게 동료들과 공동논문을 발표하고, 이듬해 《종의 기원》을 출간하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다윈은 초판 서문에서 “불완전하지만 어쩔 수 없이 출판한다”고 실토했습니다. 자신의 주장에 확신한다면서도 이런 말을 한 것은 예상되는 공격에 대한 방어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종교계의 반발은 엄청났고, 사람들은 다윈을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윈은 1872년까지 6판을 거듭하면서 내용을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용어나 내용에서도 변화가 있었는데,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라는 개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3. 적자생존의 진짜 의미 –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적자생존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오해입니다. 이 개념에서 ‘적자(適者)’는 ‘강자(强者)’가 아닙니다. ‘적자’는 환경에 ‘적합한 자’, 즉 ‘적응한 자’를 의미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흰 설원에 검은 곰과 흰 곰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포식자의 눈에 어느 곰이 더 잘 보일까요? 당연히 눈에 잘 띄는 검은 곰이 잡아먹히고 흰 곰이 살아남습니다. 그렇다면 흰 곰이 검은 곰보다 강해서 살아남은 걸까요? 그리고 두 곰이 서로 경쟁했나요? 아닙니다. 단지 검은 곰이 포식자의 눈에 잘 띄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환경에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원리의 진짜 의미입니다. 자연은 그 환경에 가장 적합한 개체를 ‘선택’합니다. 여기서 ‘살아남는다’는 것도 개체의 생존이 아니라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청둥오리를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수컷은 화려한 깃털로 암컷의 선택을 받고, 암컷은 은폐에 용이한 갈색 깃털로 포식자의 눈을 피해 알을 낳고 품습니다. 각각 자신들의 역할에 최적화된 형태로 진화한 것이죠. 이는 강약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 적응의 문제입니다.

4. 사회진화론의 함정 – 적자생존이 악용된 역사

이 진화론 개념이 사회에 잘못 적용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허버트 스펜서는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사회진화론’을 주창했는데, 이는 “사회에서도 환경 적응 법칙이 적용되므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런 사고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이론적 근거로 악용되었습니다. 선진국이 후진국을 침략하고 지배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이라고 정당화한 것이죠. 나치의 우생학도 이런 왜곡된 ‘강자 생존’ 개념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윈의 원래 이론에는 이런 사회적 함의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윈은 단지 생물학적 현상을 설명했을 뿐이고, 이를 인간 사회의 정치나 경제 체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후대 사람들이었습니다.

현대 진화생물학자들이 ‘적자생존’이라는 용어 사용을 꺼리고 ‘자연선택’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표현이 너무 많은 오해와 악용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5. 순환논리의 함정 – 적자생존 개념의 학술적 문제점

이 개념에는 학술적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순환논리(circular reasoning)’의 함정입니다. “적합하니까 살아남는다”와 “살아남으니까 적합하다”는 말이 결국 같은 뜻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예를 들어, 어떤 동물이 살아남았다면 그것은 그 동물이 환경에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동물이 환경에 적합하다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결국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처음에 ‘환경 적합성’ 개념을 동어반복(tautology)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윈이 개체들이 모두 같은 조건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실제로는 모든 개체가 1등을 해야만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2등, 3등도 살아남을 수 있고, 심지어 장려상 수준의 개체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진짜로 도태되는 것은 낙제점을 받은 개체들뿐입니다. 그래서 ‘Survival of the Fittest’보다는 ‘Survival of the Fitter'(더 적합한 자의 생존)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6. 현대 진화론에서 바라본 적자생존

현대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으로 다윈 시대에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밝혀졌습니다. 그레고어 멘델의 유전법칙은 1865년에 발표되었지만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고,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그 중요성이 인정받았습니다.

1937년 도브잔스키가 《유전학과 종의 기원》을 출간하면서 다윈의 이론을 유전자 관점에서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현대에는 DNA, RNA, 단백질 합성 등 분자 수준에서 진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본 원리는 여전히 다윈이 발견한 자연선택입니다. 환경에 적합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더 많은 후손을 남기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도태되는 과정이 진화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합함’이 절대적인 강함이 아니라 상대적인 환경 적응력이라는 점입니다.

백악기의 최강 포식자였던 티라노사우루스는 소행성 충돌로 인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했습니다. 반면 작고 약해 보이는 중소형 수각류 공룡들은 새로 진화하여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환경 적응력’의 진짜 의미입니다.

7. 일상에서 잘못 사용되는 적자생존 개념

오늘날에도 이 개념은 다양한 분야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성적이 좋은 학생만이 살아남는다”는 극단적 경쟁 논리의 근거로 사용되기도 하죠.

하지만 생물학적 환경 적응과 사회적 경쟁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자연에서는 ‘협력’도 중요한 생존 전략입니다. 개미나 벌의 사회성, 사자의 무리 사냥, 식물과 균류의 공생 관계 등은 모두 협력을 통한 생존 전략입니다.

심지어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도 협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언어의 발달, 도구의 제작과 전수, 집단 거주 등은 모두 협력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만약 정말로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면 인류는 벌써 멸종했을 것입니다.

8. 다윈이 예견한 진화론의 영향

다윈은 《종의 기원》 마지막 장에서 자신의 이론이 다양한 분야에 획기적인 변화를 줄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특히 “심리학이 새로운 기반 위에 세워질 것이며 인류의 기원과 역사에 밝은 빛을 비춰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진화심리학이 등장했고,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화론적 관점이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윈의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고 악용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다윈 자신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마지막에 “인류의 기원과 역사에 밝은 빛을 비춰줄 것”이라고 암시만 했을 뿐입니다. 인간 진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1871년 《인간의 유래》에서 다뤘습니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종교와 충돌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과학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문단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런 생물이 모두 지금 우리 주위에서 수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임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결론: 적자생존을 제대로 이해하자

적자생존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그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더 많이 전달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적합함’은 상대적이고 상황적입니다. 사막에서는 물을 적게 쓰는 능력이, 추운 지역에서는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적합함’의 기준이 됩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16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 핵심 아이디어인 자연선택은 현대 생물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개념을 인간 사회에 무분별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 진화론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경쟁보다는 적응의 중요성을, 강함보다는 적합함의 가치를, 지배보다는 공존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윈이 발견한 것은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이 아니라 “생명의 다양성과 적응의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적자생존’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 글에서 배운 진짜 의미를 알려주세요. 과학의 진실을 바르게 아는 것이 우리 모두를 더 현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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